낭만을 좇는 것, 낭만이 없다.

이 글은 ‘우아한 테크코스 6기’ 과정의 Level2 글쓰기 과제로 작성한 글입니다.

서문

이전에 썼던 글에서, 저는 ‘스스로를 드러내는 연습을 해야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마음가짐을 바로 ‘낭만’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번에 저는 ‘낭만’이라는 주제로, ‘스스로를 드러내는 마음가짐을 기르자’는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우린 낭만이란 배를 타고 떠나갈 거야

‘이세계’ 밴드의 ‘낭만 젊음 사랑’이란 노래의 가사입니다. 너무 좋지 않나요? 적어도 저는 인생을 살면서 ‘낭만’ 하나만큼은 놓치며 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만큼 의미 있는 것이죠.

혹시 여러분들에게 낭만이란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당신에게 낭만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 질문을 저에게 한다면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네요. 낭만 있는 순간을 한 번 떠올려 볼게요.

우테코 크루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청량한 하늘을 바라봤을 때, 주변의 소음과 머릿속의 잡생각이 사라지고, 온전히 그 순간의 나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될 때, 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한강에 가서 윤슬을 바라보며 물멍을 때리다가, BBQ 황금 올리브에 맥주 한 잔을 곁들일 때, 그게 “이게 낭만이지!” 라는 생각이 들 것 같습니다.

이렇게 낭만에는 여러 형태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낭만을 “각자의 삶에서 각자의 특별한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경험”으로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왜 갑자기 낭만 타령이냐고 물으신다면, 제가 이번에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바로 “자기 자신을 조금 더 드러내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자기 자신을 적절하게, 그리고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것, 그리고 표현하는 것. 그렇게 할 수 있는 마음의 기초엔 저는 낭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낭만적 사유를 통해 세상을 보다 풍부하게 경험할 수 있다 믿습니다. 낭만적 사유를 통해 개성있는 방식으로 세상을 경험하면서, 어쩌면 다른 사람들은 경험해 보지 못했을 그런 개성 있는 것들을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과 연결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온전한 나를 세상에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죠.

이것이 우리가 낭만을 좇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정말 낭만적이지 않나요?

낭만을 좇는 것, 낭만이 없다.

하지만, 이 세상은 낭만을 좇기엔 너무 팍팍합니다. 현대 사회, 효율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마치 대량 생산이 상품의 규격화를 요구하는 것 처럼, 우리에게 표준적인 모델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그 모델에 가까운 사람들이야말로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겠죠. 아니, 행복해 보이는 삶이요.

낭만을 좇는다는 것은, 그런 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마치 반란군과 같은 모습이 연상됩니다. 고전적인 규칙과 관습을 거스르고, 개인의 존엄성을 울부짖는 것이죠.

그러면 우리는 낭만 있는 삶을 살 수 없을까요? 갓생을 살면서 지금보다 더 나은 지위, 명예를 위해서 낭만은 그저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 사회의 세속적인 면을 포기하고 낭만을 좇아 절에라도 들어가야 할까요?

사람을 나무에 비유해 볼게요. 끊임없는 성장을 하고자 하는 나무 한 그루가 있다고 생각해봐요. 우리 사회는 나무가 하늘을 향해 끊임없이 뻗길 원합니다. 그리고 그 나무는 하늘이란 목표를 향해서 계속해서 성장해나가야 행복해 질 것 같습니다. 이 나무에게 낭만은 무엇일까요?

제가 생각하기엔 깊게 뻗은 뿌리와 같은 것이 낭만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난과 역경을 견딜 수 있게 버텨주는 뿌리요. 뿌리를 깊게 내리는 시간에 조금 더 하늘로 높히 뻗을 수 있는데, 굳이 뿌리를 내리는 것이요.

하지만 뿌리를 내리는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낭만을 좇는 것은 어렵습니다. 뿌리를 내리는 것은 인정받지 못해요. 지면 위로 보이는 우리는 보잘 것 없고 하찮아 보입니다. 뿌리가 아무리 깊어도, 곧게 뻗지 못한 나무는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죠. 하찮은 존재라는 취급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낭만을 좇기란 정말로 어렵습니다. 효용 없는 나무로 취급받으면서까지 뿌리를 내리는 것은 낭만적이지 못해요.

그렇다면 어떻게 낭만을 좇을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백치적인 것이다.

'백치'에 씌어진 부정적인 의미를 해체하고, 대신 순수한 인간성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사랑하고, 사랑하는 만큼 받고 싶습니다. 인간의 가장 절실한 욕구라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평가하는 우리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사랑받기 위해, 화려한 나로 비춰지고 싶기에, 뿌리를 내리는 결정보다 하늘로 조금 더 뻗는 선택을 하곤 합니다.

그래서 백치와는 거리가 먼 선택을 하죠. 항상 완벽하게 보여지길 희망하고 노력합니다.

저는 낭만을 좇기 위해서 이런 자아도취적 꿈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각자 다른 자아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획일화 한 표준을 잣대로 평가된다면, 우리는 백치스럽게 보이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만족스럽지 못한 스스로를 인정하는 것이 낭만을 좇는 첫 번째 단계가 아닐까요?

아니 오히려 우리 주변엔 완벽해 보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우리의 백치적인 면모가 우리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진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낭만을 좇는 선택을 하겠습니다. 조금 덜 화려한 사람으로 비춰지더라도,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믿어요. 자아를 성장시킬 수 있는 진정한 선택이라 생각됩니다.

어쩌면 깊게 내린 뿌리를 원동력으로, 흔들리지 않고 언젠가 하늘로 가지를 곧게 뻗은 나무가 될 수 있을 수도요. 낭만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 의해 수동적으로 맞춰진 내가 아니라, 온전한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여러분들은 어떤 낭만을 좇고 계신가요?